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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극동지역 코리안의 이주레짐, 박현귀(Hyun-gwi Park)
박현귀
번역 : 송영화
차이를 걸러내고 담아내는 연해주의 코리안들
번역자: 송영화
1863년을 시작으로 수많은 한인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다. 이들은 중국인·러시아인과 부 대끼며 살았다. 1937년 소련은 다수의 한인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후 한인들은 소비에트적 정체성이 부각되는 ‘고려인(고려사람)’이 되었다. 스탈린 사후 고려 인의 이동제한 조치가 풀렸다. 고려인 중 일부는 이동제한의 조치가 폐지된 직후에 고향의 땅 인 연해주로 향한 반면, 또 다른 일부는 소련이 해체된 후에 이주했다.
저자 박현귀는 연해주에서 추방당했던 고려인이 어떻게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경제적 성공을 거두어 다시 정착하게 되었는지 질문을 던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먼저 고려인이 연해주에 귀환한 시간의 차이, 즉 1950년대와 1990년대에 주목한다. 이 두 시기에 해당하 는 고려인 집단을 중심축으로 두되, 또 다른 코리안 집단(조선족, 남·북한 사람)과의 관계까지 고려하며, 연해주에서 코리안 하위집단 간의 협력기반이 만들어졌다는 점을 논증한다. 이 논문은 이주시기에 따른 고려인 내부의 차이와 더불어 이들의 이주현상을 다자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저자는 코리안이 “포괄적 용어”라고 말한다. 분명 이 글에서 ‘코리안’에는 공통의 역사적 기억과 상이한 이주배경을 지닌 집단이 교차한다. 이러한 뉘앙스를 살리고자 가능하면 ‘Korean’이라는 용어를 코리안으로 그대로 번역했다.
이 글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개념어 제시의 효과다. 저자는 ‘시민 권레짐(citizenship regime)’이라는 개념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이주레짐(migration regime)’ 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제도중심적 시각이 전제된 시민권레짐에 대비하여, 저자는 이주를 둘러싼 부가적이고 비공식적인 체계를 이주레짐이라고 불렀다. 즉 이주레짐이라는 개념어를 제시하여 이주관행의 문제에서 공식적 측면만이 아니라 비공식적 측면도 시야에 넣은 것이다.
두 번째는 현상을 지칭하는 개념의 타당성이다. 이주레짐이라는 용어는 연해주에서 상이한 이주배경을 지닌 코리안 집단이 상호작용하는 양태와 그 결과를 포괄적으로 담아낸다. 저자는 1950년대에 연해주로 이주한 고려인, 90년대에 이주한 고려인,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조선족, 남북한 사람이 “서로 연합하고 교류하는 관행”을 개념화한다. 고려인이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조선족과 사업파트너로서 부를 쌓은 현상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고려인은 코리안 하위집단 간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민족범주로 배제될 수 있다는, 복류하던 불안감으로부터 해방됐다.
세 번째는 글 전반에 흐르는 동태적 시각이다. 저자는 이주문제를 고려할 때 공간적 측면만이 아니라 시간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고려인이 민족차별이 있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이주시기에 따라 그 정도를 달리 인식하는 현상을 그 근거로 든다. 일례로 저자는 민족 차별 문제가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판단한 올드커머 고려인 레오니드와 이전보다 나빠졌다고 생각한 뉴커머 고려인 올가의 의견차가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성 속에서 표현된다고 해석한다. 이처럼 연해주라는 공간에 서로 다른 코리안 집단이 시간의 차이를 두고 갈마들며 자리했고 의견차도 있었으나, 분명 민족차별이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저자가 케이시의 논의를 빌려 이런 현상을 “의견과 경험을 모”아 담아내고 버리는 ‘체’에 비유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논문은 배제된 사람들이 배제 관행에 대처하는 협력전략을 보여주며, 민족차별을 가로지르는 소수자 집단의 행위성을 부각한다. 이 점이 이 논문이 지닌 미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글 곳곳에 보이는 공간성과 시간성에 대한 은유와 통찰은 인간의 이동과 흐름을 다루는 인접 연구분야에도 영감을 주리라 기대한다.
첨부파일 : 러시아 극동지역 코리안의 이주레짐, 박현귀.pdf
2023.08.21
20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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