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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미선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76輯
발행연도
2015.10
수록면
121 - 159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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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영조의 후궁 영빈이씨의 생애와 위상을 살펴본 연구로서, 그녀의 생애 가운데에 임오 대처분의 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이 글은 주로 「묘지」와 「행장」 그리고 『한중록』 등의 자료를 활용하였다.
영빈이씨(1696~1764)는 사도세자의 생모이자 정조의 할머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궁녀로 입궁했다가 영조의 총애를 얻어 정1품 빈에 까지 오른 최고의 여성이었지만 생전에 참혹하게 죽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비운의 여성이었다. 보통 ‘임오화변’으로 불리는 이 사건에서 분명 그녀는 영조에게 아들의 비행을 알려주고 죽음을 요청하는 등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종묘사직과 국가의 안위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
임오년에 보여준 그녀의 판단력과 결단력은 어린 나이에 입궁한 후 20년 간 궁궐에서 지내면서 궁관의 경험으로 터득한 결과였다. 즉, 그녀의 의로운 행동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궁관으로서 뛰어난 업무수행능력을 발휘하였고 궁중예법을 잘 아는 왕실여성으로서 근신한 몸가짐과 언행을 항상 유지하였으며, 영조의 후궁으로서 내조자의 역할을 수행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후에 영빈이씨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영조는 물론 고종 때까지 종사의 대의를 위한 것임을 천명한 영조의 유지를 받들어서 지속적으로 예우되었다. 다만 손자 정조는 사당의 칭호를 의열에서 선희로 고쳐 임오 의리를 평가 절하했지만, 義烈墓-義烈宮에서 綏慶園-宣禧宮의 체제에 적용된 그녀의 무덤과 사당은 다른 후궁과는 분명 높은 위격을 갖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영빈이씨에 대한 평가는 임오 대처분 요청의 진실 여부를 떠나 영조의 평가와는 달리 ‘비정한 어머니’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 그녀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목차

국문 초록
Ⅰ. 머리말
Ⅱ. 입궁과 지위변화
Ⅲ. 壬午 大處分 요청
Ⅳ. 暎嬪 추숭과 위상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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