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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현 (홍익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서양고전학회 서양고전학연구 서양고전학연구 제57권 제2호
발행연도
2018.9
수록면
203 - 230 (28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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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민관은 다른 고대 도시국가에서는 유례가 없는 로마만의 특별한 정무관으로, 체계적⋅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본고는 그것의 첫 번째 단계로 공화정 초기(기원전 494년∼287년) 호민관의 기원과 발전을 탐색한다. 이 연구주제는 고대 로마 역사가들도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하지만 그들의 서술은 세부사항이 상이할 뿐만 아니라 다수의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그것은 초기의 역사적 사건들이 후대의 정치적 상황 및 역사관에 맞게 계속 수정되고 윤색되었기 때문이다. 공화정 초기의 역사 특히 호민관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이유이다.
지나친 비판과 회의보다는 문헌 사료의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공화정 초기 호민관의 기원과 발전의 역사성을 재고해보아야 한다. 평민이 귀족에 대항해서 집단적인 철수의 방법 등을 이용하여 자신들만의 기구를 조직할 기회를 잡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민관과 평민회는 강경파 귀족이 인정하길 꺼렸던 법적 영역 밖에 있는 기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호민관은 신성법에 의해 보장받은 신체불가침권을 기반으로 도움이 절실한 평민에게 도움(auxilium)을 제공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비토권, 사법권, 입법권 등의 권한들을 획득함으로써, 공화정체의 주요 부분으로 수용되었다. 물론 그 과정은 고대의 사료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보다 더 점진적이었고 후대에 가서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기원전 287년경의 호르텐시우스 법은 그 기나긴 과정의 마지막 결과였다. ‘평민의 결의’가 법적 효력을 자동으로 획득함으로써, 평민회는 평민 정무관을 선출하는 업무 외에도 입법 및 사법 기구로서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평민회를 소집하고 주재하는 권한을 보유한 호민관은 로마 정체의 정규 정무관으로 완전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공화정 초기에 관한 고대의 연대기들과 현대 학자들은 호민관의 기원과 발전을 보통 신분 투쟁의 맥락에서 설명한다. 호민관의 선출과 평민회의 설치가 귀족 지배의 정치구조를 거부하고 평민만의 조직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신분 투쟁은 평민조직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준거 틀이다. 하지만 이른바 평민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이 로마의 정치⋅경제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호민관의 역사를 신분 투쟁의 맥락에서만 설명해서는 안 됨을 암시한다. 호르텐시우스 법이 고대의 연대기에 역사적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 따라서 공화정 초기 호민관의 역사는 신분 투쟁이란 정치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호민관이 정체의 한 부분으로 수용되는 과정이라는 행정적인 측면에서도 설명되어야만 한다.

목차

요약문
1. 서론
2. 호민관의 기원
3. 호민관 권한과 발전
4. 호르텐시우스 법과 호민관
5.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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