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형주 (경희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30호
발행연도
2009.7
수록면
67 - 102 (3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조선시대 왕은 최고 권력자로 국가의 흥망성쇠는 그의 개인적 능력과 품성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컸다. 이 상황에서 다음 대 왕위 계승자인 세자에 대한 교육은 무엇보다 중시되었는데, 본고에서는 세자교육과 사대부교육과의 차별성을 국가의례의 교육과 실천에서 찾을 수 있다는 관점에서 그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하였다.
세자교육은 태종?세종대를 거치면서 世子侍講院과 書筵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제도적인 정비가 마련되었다. 세자교육은 경전의 記誦을 통해 과거를 준비하는 사대부 자제들의 교육과 달리 心性 함양과 言動의 規正을 바탕으로 역대 제왕들의 다양한 治亂의 경험을 학습시키는데 중점이 두어졌다. 아울러 초기의 왕들은 어린 세자를 명에 보내 황제가 주재하는 각종 의례에 참여시킴으로써 그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동시에 국제적 감각을 익히도록 배려하였다. 세자의 교육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시되었던 것은 의례교육이었다. 세자의 의례교육은 학습과정에서 필요한 學禮의 습득과 다양한 국가의례에 참여해 정치적 자질을 높이는 체험 학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세자는 책봉된 직후 성균관에서 謁聖과 入學禮를 거행하여 臣民들에게 장차 유교군주로서의 모습을 인식시켰고, 이후 스승과의 일상적 만남을 규정한 師傅相見禮와 書筵會講禮를 통해 훗날 통치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키웠다. 이러한 학례에서 세자는 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至尊의식을 내세우기 보다는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는 제자의 공손한 모습을 드러냈다.
소년기를 벗어난 세자는 다양한 국가의례에 참여함으로써 예법을 익히는 동시에 군신간의 위계질서를 체득하는 정치학습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세자는 국왕이 주도하는 국가의식에 2인자의 역할을 담당했지만 성년기에 이르면 주도적으로 의례를 주관하고 국정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종?세조 등은 성년기의 세자와 群臣간에는 의례상으로 상호 차별화된 모습이 필수적이라 판단하여 明禮에 근거하여 세자의 南面受朝와 신하들의 四拜禮, 稱臣 등을 강요해 신료들과 갈등을 빚었는데, 현존 『국조오례의』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삭제되었다.
국가의례는 대체로 이른 새벽에 종친과 문무백관, 호위군사 등 수 천명의 인원이 정렬한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의식은 엄격한 격식에 따라 장엄하게 진행되었고, 세자는 行禮의 전 시간동안 엄숙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기에 그 교육적 효과는 컸다. 조선시대에는 세자의 국가의례 참여가 반드시 습득해야만 할 엄격한 교육과정인 동시에 훗날 통치자로서 그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시대가 흐르면서 세자의 의례교육은 더욱 강화되어 ‘禮治’의 구현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왕실 교육기관과 세자의 입조
3. 세자의 의례 참여와 學儀
4. 明禮의 수용과 세자 位次의 변화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8)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3-380-001443192